인생기록

눈오리집게

인생꿀팁 방장 2022. 12. 21. 08:05
반응형

작년 어느때 폭설이 내렸다.

뉴스에서는 올겨울 최고 적설량이라며 연신 보도했고 거리 곳곳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다.
마침 그날 약속이 있어 잠깐 외출했는데 온통 새하얀 세상이 펼쳐져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릴 땐 마냥 좋기만 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끄러운 길바닥 탓에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해야 했고 옷이랑 신발이 더러워지는 것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 오는 날이 좋은 건 아마도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이리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눈사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땐 그저 신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순수했던 것 같다.
물론 나이 들었다고 해서 감성이 메마른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예전만큼 낭만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어쩌면 현실에 치여 살다 보니 점점 무뎌진 걸까?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 집 앞에서 우리집 강아지 뽀미와 함께 눈밭을 뒹굴며 놀았다.
한참 놀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마침 집에 사둔 냉동만두가 있어 만두국을 끓이기로 했다.
육수를 내기 위해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팔팔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우리집 뽀미의 짖는 소리였다.
녀석은 테라스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연신 짖어댔다.
자세히 보니 길바닥에 쌓인 눈 위에 작은 오리 눈사람이 놓여있는 게 아닌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쯤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이 떠올랐다.
일명 '눈오리 집게' 인증샷이었는데 그걸 직접 보게 되다니 신기했다.

일년 뒤, 며칠 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남편이 들어왔다.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택배 상자를 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또 뭐 샀어?" 맞다. 난 또 뭔가를 샀다.
이번엔 정말 필요해서 산 건데 왠지 모르게 찔렸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당당하게 말했다.
"응 이거 봐봐. 엄청 귀엽지?"
그러자 남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테라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귀엽긴 하네. 근데 저거 누가 치우지?" 아차 싶었다.
그렇다.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설경에만 정신이 팔려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저 귀여운 오리 눈사람 뒤에 숨겨진 현실을 말이다.

반응형